뉴욕 게이 해방의 부두, 사진으로 돌아오다
스탠리 스텔라의 1970년대 아카이브가 책이 됐다
스탠리 스텔라의 1970년대 아카이브가 책이 됐다
뉴욕 첼시와 웨스트빌리지를 가르는 허드슨강변에는 한때 해양화물 운송이 끊기면서 그대로 버려진 선착장들이 있었다. 철조망이 뚫리고 바닥 나무가 썩어가던 이 폐부두는 당국의 관리 밖에 놓인 공간이었고, 1970년대 뉴욕 게이 남성들에게는 거리에서 드러낼 수 없던 자신을 드러내도 되는 유일한 '눈에 보이는' 만남의 장소였다. 1945년생 사진작가 스탠리 스텔라는 1976년부터 이 풍경을 찍기 시작해, 크루징하고 일광욕하고 서로의 품에서 잠드는 남자들을 담은 수천 장의 필름을 남겼다. 브루클린에서 자라 파슨스에서 그래픽디자인과 사진을 공부한 그는, 스스로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설명할 언어나 이미지를 당시 사회에서 찾지 못했던 세대였고,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직접 그 장면 안으로 들어갔다. 이 50년치 아카이브가 이제 처음으로 한 권의 책, '돈트 워리 보이즈(Don't Worry Boys)'로 묶여 나왔다는 사실이 지금 주목받는 이유다. 그 시기 퀴어 공간을 기록한 자료는 대개 경찰 단속 사진이나 재판 기록처럼 바깥에서 들어온 시선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당사자가 직접, 그 공간 안에서 함께 머물며 찍은 1차 기록이라는 점에서 드물다.
무엇이 달라졌나
'돈트 워리 보이즈'는 영국 독립출판사 루즈 조인츠(Loose Joints)가 2026년 내놓은 약 200페이지짜리 책으로, 사진가 조던 핸콕(Jordan Hancock)이 스텔라의 수십 년치 네거티브를 편집했고, 게이 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앤드류 홀러란(Andrew Holleran)이 글을 얹었다. 담긴 시기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장소는 크리스토퍼 거리와 허드슨강 선착장, 그리고 당시 게이 남성들이 모이던 바와 커뮤니티 공간까지 폭넓다. 스텔라는 아마추어로 남지 않았다. 1981년부터는 더 뉴욕 네이티브(The New York Native)와 크리스토퍼 스트리트 매거진(Christopher Street Magazine)의 전속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당대 게이 언론의 시각 기록을 책임졌고, 그 결과물은 지금 하버드 미술관과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돼 있다. 같은 시대를 기록한 로버트 메이플소프나 피터 후자가 주로 스튜디오 안에서 완성된 인물 사진으로 퀴어 육체를 예술로 승격시켰다면, 스텔라는 반대로 거리와 부두, 바 테이블 사이를 누비며 '찍히는 순간 그 자체가 삶'이었던 장면들을 남겼다. 이 차이가 이번 책이 기존 퀴어 사진 아카이브와 구분되는 지점이다.
왜 지금인가
이 아카이브가 지금 책으로 묶인 데는 몇 가지 맥락이 겹친다. 먼저 출판사 루즈 조인츠는 그간에도 주류 미술사에서 비켜나 있던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네거티브를 발굴해 단행본으로 복원하는 작업을 해온 곳으로, 스텔라의 경우도 본인이 평생 간직해온 필름 박스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수십 년이 걸린 셈이다. 다음으로 퀴어 역사 서술의 무게중심이 바뀌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1970~80년대 뉴욕 게이 문화를 다룬 기록은 1990년대 이후 들이닥친 HIV·에이즈 위기의 상실감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는데, 스텔라의 사진은 그 비극이 오기 전 '해방의 에너지'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동시에 증언한다. 상실만이 아니라 그 이전의 기쁨과 공동체의 일상을 함께 복원하려는 흐름은 최근 퀴어 역사 서술에서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또한 지금 당사자 세대의 사진가들이 고령에 접어들며, 생전에 직접 자신의 아카이브를 편집해 책으로 남기는 작업이 시급한 과제가 됐다는 점도 있다. 1945년생인 스텔라가 50년 전 필름을 지금 본인의 증언과 함께 책으로 내놓은 것은, 당사자 기록이 사라지기 전에 묶여야 한다는 공통의 긴박함과 맞물려 있다. 아카이브 사진이 미술관 소장품으로만 머물다가 손에 잡히는 책으로 다시 묶이는 지금의 흐름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다음에 볼 것
'돈트 워리 보이즈'를 접한 독자가 다음으로 확인할 만한 지점은 몇 가지다. 우선 이 책에 실린 선착장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텔라가 걷던 허드슨강변의 폐부두 자리는 이후 정비되어 지금의 허드슨 리버 파크 산책로로 바뀌었고, 한때 크루징의 무대였던 공간이 조깅하는 사람들의 공원이 된 셈이다. 이 변화를 알고 책을 보면 사진 속 풍경이 단순한 흑백 기록을 넘어 지금은 완전히 사라진 지형에 대한 유일한 증거로 다가온다. 또 하나 눈여겨볼 지점은 루즈 조인츠라는 출판사의 행보다. 이 출판사가 앞으로도 비슷한 성격의 미공개 퀴어 아카이브를 발굴해낼지, 이번 책에 대한 반응이 그 방향을 가를 가능성이 크다. 스텔라의 작품이 이미 하버드 미술관과 뉴욕 MoMA에 소장돼 있다는 점도 이 책이 전시나 후속 기획으로 이어질 여지를 남긴다. 크리스토퍼 거리와 허드슨강변이라는 실제 장소가 책의 배경이라는 점에서, 지금 그 동네를 걷는 독자라면 사진 속 좌표와 현재의 풍경을 겹쳐보는 것만으로도 또 다른 독서가 가능하다. 결국 이번 출간은 한 개인의 회고록에 머물지 않고, 당사자가 직접 남긴 퀴어 공공 공간의 기록이 얼마나 희소하고 또 얼마나 늦게라도 복원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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