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으로 뒤덮은 10년, 생로랑이 남긴 작별 신호
쇼 하나가 퇴진설을 사실처럼 만들었다
쇼 하나가 퇴진설을 사실처럼 만들었다
지난 9월 29일 파리 에펠탑 아래에서 열린 생로랑 2027년 봄여름(SS27) 컬렉션 쇼가 끝나자, 패션 매체들보다 먼저 소셜 미디어에서 이 쇼를 작별 인사로 읽는 반응이 쏟아졌다. 안토니 바카렐로가 생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취임한 지 정확히 10년째 되는 시점에, 트렌치코트부터 이브닝드레스까지 쇼에 오른 모든 룩을 금빛 한 가지 색으로 뒤덮은 선택이 예사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포인트 컬러가 아니라 쇼 전체를 지배하는 색으로 금을 쓴 것은 바카렐로 본인의 10년 중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라, 단순히 화려한 쇼였다면 이렇게까지 많은 해석이 쏟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10년이라는 숫자, 쇼가 열리기 전부터 이미 돌던 퇴진설, 그리고 쇼가 끝난 뒤 공개된 노트의 문장까지 한 방향으로 겹치면서, 이번 쇼는 다음 시즌을 예고하는 컬렉션 발표가 아니라 떠나는 사람이 남기는 메시지로 소비되고 있다. 쇼가 끝난 지 몇 시간 만에 10년의 마무리라는 제목을 단 게시물이 패션 커뮤니티를 빠르게 돌기 시작했는데, 정작 생로랑과 모회사 쪽의 공식 반응은 아직 하나도 나오지 않은 채라는 점이 이 확산을 더 키우고 있다. 에펠탑이라는 상징적인 장소에서 커리어의 10주년을 금빛으로 장식한 장면 자체가, 바카렐로가 이 시기를 스스로 어떻게 규정하고 싶어하는지를 보여주는 선택으로 읽히고 있다.
무엇이 달라졌나
바카렐로는 이번 SS27에서 금색을 쇼의 포인트가 아니라 컬렉션 전체를 관통하는 언어로 썼다. 라메, 오간자, 레이스, 무슬린, 브로카드, 자카드까지 여섯 가지 소재 전부에 금박 코팅을 입혀, 같은 금색이라도 소재에 따라 완전히 다른 질감으로 읽히게 만들었다. 어떤 룩에서는 금속처럼 단단하고 날카롭게, 어떤 룩에서는 액체처럼 흐르듯 부드럽게 보이도록 설계한 것이다. 특히 라텍스에까지 금박을 입힌 룩은 생로랑이 그동안 거의 쓰지 않던 소재여서, 하우스의 전통적인 테일러링 이미지와는 결이 다른 실험으로 눈에 띄었다. 날카로운 숄더라인의 테일러링과 테이퍼드 레그, 트렌치코트와 랩스커트처럼 하우스의 오래된 아카이브 요소를 가져오면서도, 실루엣만큼은 바카렐로 특유의 과장된 어깨와 짧은 수트, 퍼 장식으로 마감해 자신의 10년을 요약하듯 구성했다. 이브 생로랑 본인이 금색을 태양의 색이라 부른 뒤로 이 하우스에서 금은 늘 특별한 자리를 차지했지만, 쇼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금 하나로만 밀고 간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쇼의 마지막 순서에서는 돌연 블랙 벨벳 수트와 구름처럼 가벼운 이브닝드레스가 등장하며 그 많던 금빛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화려함을 끝까지 유지하는 대신 스스로 빛을 거둬들이는 쪽을 택한 구성이, 이게 마지막일 수 있다는 해석에 설득력을 더해주는 지점이다.
왜 지금인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퇴진이 소문으로 먼저 퍼지고, 정작 하우스와 모회사는 한동안 침묵하는 패턴은 파리 패션위크마다 반복돼 온 흐름이다. 생로랑과 모회사 케링 모두 바카렐로의 교체 여부를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이미 후임 후보로 현재 클로에를 이끌고 있는 케메나 카말리의 이름이 오가고 있다. 카말리는 과거 생로랑에서 여성복 디자인을 직접 담당했던 인물이라, 이 복귀설이 단순한 추측 이상의 무게를 갖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더해 이번 쇼 노트에는 빛은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 때 더 밝게 빛난다는 문장이 실렸고, 피날레에서는 샬롯 갱스부르가 당신은 너무나도 많은 것입니다 이브 생로랑이라는 가사를 반복해 불렀다. 디자이너 교체 시즌마다 쇼 자체를 하나의 메시지로 읽어내려는 움직임 자체는 새롭지 않지만, 이번처럼 색채와 음악과 쇼 노트가 동시에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경우는 흔치 않아서 추측이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퍼지고 있다. 본인이 직접 입을 열기 전까지는 어떤 설명도 공식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알면서도, 쇼 하나의 이미지만으로 이런 해석이 이렇게 확정적으로 퍼지는 것은 이례적이다. 공식 발표 하나 없이도 해석이 먼저 확정되고 퍼져나가는 지금의 반응 속도 자체가, 패션 하우스의 교체 소식이 소비되는 방식이 예전과는 달라졌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다음에 볼 것
지금 시점에서 확인된 사실은 바카렐로가 10년째 생로랑을 이끌고 있고, 이번 SS27 쇼가 그 10년을 금빛으로 정리하는 형태로 꾸려졌다는 것뿐이다. 하우스 교체 여부에 대한 공식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고, 다음 공식 일정이나 후속 컬렉션 공개 전까지는 모든 해석이 어디까지나 추측에 머문다. 그래도 관전 포인트는 세 가지로 좁혀진다. 첫째, 생로랑과 케링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입장을 내는가다. 통상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교체는 시즌 사이 비수기에 보도자료 형태로 조용히 공지되는 경우가 많아, 다음 공지 시점 자체가 하나의 신호로 읽힐 수 있다. 둘째, 카말리가 실제로 자리를 옮긴다면 현재 몸담고 있는 클로에 쪽 일정과 겹치지 않도록 조율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동 시점을 거꾸로 가늠해볼 수 있다. 셋째, 바카렐로 본인이 다음 행선지를 밝히는지 여부다. 10년을 채운 디렉터가 하우스를 떠난 뒤 어디로 향하는지는 그 자체로 업계 전체의 관심사가 되기 때문이다. 이 세 갈래 가운데 하나라도 구체적으로 움직이면, 지금 소셜 미디어를 채우고 있는 추측은 그대로 공식적인 사실로 바뀌게 되고, 그 전까지는 이번 SS27이 남긴 이미지 자체가 가장 확실한 단서로 남는다. 다음 공식 일정이 잡히기 전까지는 이번 쇼의 사진과 영상이 계속 재해석되며 돌아다닐 가능성이 크다.
A small team that reads too much internet so you don't have t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