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감 재고 서로 열어준 섬유상사 3곳
생지 재고, 이제 경쟁사 사이트에서도 산다
생지 재고, 이제 경쟁사 사이트에서도 산다
일본의 대형 섬유상사 3곳이 각자 운영해온 온라인 원단 판매 채널을 서로에게 개방하기로 했다. 야기(ヤギ)의 "파블리(Fably)", 산웰(サンウェル)의 "산웰넷(Sunwell Net)", 타키사다(瀧定)의 "타키사다 온라인 스튜디오"가 그 주인공으로, 지금까지는 각 사이트에 접속한 고객이 그 회사가 보유한 재고만 살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한 사이트에서 다른 두 회사의 원단까지 함께 검색하고 구매할 수 있게 된다. 도매 유통이라는, 오랫동안 대면·전화·팩스 발주 관행이 굳어 있던 업종에서 경쟁사끼리 판매 채널을 맞바꾸는 방식의 연합이 나왔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세 회사 모두 각자 1,500~2,000개 품번을 취급하는 중견 이상의 섬유상사로, 규모가 비슷한 플레이어들이 "따로 크는" 대신 "같이 여는" 쪽을 택했다는 점이 이번 소식의 핵심이다.
무엇이 달라졌나
지금까지 야기의 파블리, 산웰의 산웰넷, 타키사다의 타키사다 온라인 스튜디오는 각각 독립된 온라인 스토어로 운영돼 왔다. 원단을 구매하려는 의류 브랜드나 봉제업체는 필요한 소재가 어느 회사 창고에 있는지 미리 알아야 했고, 세 곳을 따로따로 접속해 재고를 확인하고 발주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이번 연동으로 이 구조가 바뀐다. 예를 들어 파블리에 접속한 사용자는 산웰넷이나 타키사다 온라인 스튜디오가 보유한 생지도 같은 화면에서 조회하고 구매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산웰넷이나 타키사다 온라인 스튜디오 사용자도 다른 두 회사의 재고에 접근할 수 있다. 초기 연동 품번은 30개로 시작하는데, 각 사가 개별적으로 취급하는 품번이 1,500~2,000개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은 시범 단계에 가깝다. 세 회사는 이 연동 품번 수를 앞으로 순차적으로 늘려가겠다고 밝혔다. 야기의 야기 다카오 사장은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비교·검토·상담이 가능한 환경을 3사가 함께 만들고 싶다"고 이번 연동의 취지를 설명했다. 경쟁사 재고를 자사 플랫폼에서 열람·구매하게 해주는 방식은 흔치 않은 결정이라, 유력 원단 도매상 3곳이 동시에 이 방향을 택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번 소식의 무게를 보여준다.
왜 지금인가
이번 3사 연합의 배경에는 산웰넷이라는 선례가 있다. 산웰넷은 25년 전 문을 연 일본 텍스타일 EC의 원조 격 서비스로, 산웰의 이마이즈미 지로 사장에 따르면 현재 거래 건수 기준으로 7~8할이 이미 EC를 거쳐 이뤄진다. 도매 원단 거래가 여전히 영업사원의 대면 제안과 전화·팩스 발주에 크게 의존하는 업계 관행을 생각하면, 20여 년에 걸쳐 거래의 대부분을 온라인으로 옮겨온 산웰넷의 사례는 이번 연합의 실질적 근거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산웰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산 전 단계에서 미리 주문을 받는 선행수주 서비스도 함께 운영 중인데, 타키사다의 울 생지를 이 방식으로 시험 판매했을 때 반응이 좋았다고 이마이즈미 사장은 밝혔다. 즉 "재고를 쌓아두고 파는" 전통적 방식과 "주문을 먼저 받고 만드는" 새로운 방식이 한 플랫폼 안에서 동시에 검증되고 있는 셈이다. 의류 브랜드와 봉제업체 입장에서도 원자재 소싱을 여러 창구로 나눠 관리하는 부담은 꾸준히 지적돼 온 문제였고, 소량·다품종 생산이 늘면서 여러 공급사의 재고를 한 번에 비교하고 싶다는 수요도 함께 커져왔다. 세 회사 모두 비슷한 체급의 중견 상사라는 점도 이번 연합이 지금 성사된 이유로 볼 수 있다. 압도적 1위 사업자가 없는 시장 구조에서는 경쟁보다 표준을 함께 만드는 편이 각 사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에 볼 것
지금 확인할 수 있는 숫자는 초기 연동 품번 30개뿐이다. 각 사가 보유한 1,500~2,000개 품번 전체가 아니라 극히 일부만 우선 연결된 만큼, 앞으로 이 숫자가 얼마나 빠르게 늘어나는지가 이번 연합의 실질적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첫 지표가 될 것이다. 산웰넷에서 검증된 선행수주 방식이 파블리와 타키사다 온라인 스튜디오로도 확대될지도 지켜볼 대목이다. 타키사다 울 생지의 선행수주 테스트가 호평받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재고 기반 판매와 선주문 기반 판매를 결합한 형태가 세 플랫폼 전반의 표준 판매 방식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이번 연합이 3사에 국한될지, 아니면 다른 원단 도매상이나 소재 제조사까지 참여를 넓히는 개방형 플랫폼으로 발전할지도 관전 포인트다. 세 회사가 함께 밝힌 "누구나 접근 가능한 비교·검토·상담 환경"이라는 지향점은 원단 거래소에 가까운 그림을 그리고 있어, 향후 참여사가 늘어난다면 일본 텍스타일 도매 시장 전체의 거래 방식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오랫동안 폐쇄적으로 운영돼온 B2B 원단 유통이 이번 연합을 계기로 얼마나 개방적인 구조로 바뀌는지, 앞으로의 품번 확대 속도와 참여사 발표를 계속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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